장승에 담긴 수호신의 의미와 한국인의 정서
장승은 마을 어귀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악귀를 물리치고 경계를 상징하는 전통 목조 조형물이자 수호신이다.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장승은 단순한 표지물이 아닌, 한국인의 공동체 의식과 민속 신앙, 그리고 유머와 해학이 담긴 생활 조각으로 평가받는다. 시대에 따라 그 의미는 확장되어 왔으며, 현재는 관광 자원과 예술적 콘텐츠로서 재조명받고 있다.
1. 장승은 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는가
장승은 한국 전통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또는 돌로 만든 기둥 형태의 조형물로, 본래는 마을의 경계를 나타내거나 외부의 액운을 막아주는 수호신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장승이 단지 마을 입구의 표지물이 아니라 한국인의 신앙과 정서, 그리고 공동체적 삶의 방식이 반영된 전통 조형물이자 상징물이라는 점은 깊이 들여다볼 만한 가치가 있다. 장승의 기원은 명확하게 문헌에 남아 있지는 않지만, 삼국시대 이전부터 마을 어귀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이를 신성시하며 공동체를 보호하고자 했던 토속 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장승은 민간의 신앙과 더불어 행정적 기능까지 수행하게 된다. 실제로 관에서 관리하는 ‘관아장승’은 행정구역의 경계 표시를 겸했으며, ‘동제장승’은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의 중심이 되었다. 장승은 대부분 한 쌍으로 세워지며,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라는 명칭이 흔히 사용된다. 이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모두 다스린다는 상징이며, 남성과 여성의 원리를 통해 음양의 조화를 표현하는 구조다. 이러한 상징은 단순히 미신에 그치지 않고, 한국 고유의 우주관과 생명관이 녹아 있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장승이 세워지는 위치는 매우 상징적이다. 보통 마을 어귀나 갈림길, 사찰 입구, 산 아래의 입구 등에 세워지는데, 이는 외부의 부정적 기운이나 귀신이 마을이나 성역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종의 경계 역할을 의미한다. 즉, 장승은 물리적 경계임과 동시에 정신적, 영적 장벽의 상징인 셈이다. 장승은 조형적으로도 매우 독특하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과장되고 유머러스한 표정, 위압적인 눈과 입, 때로는 익살스러운 웃음이 공존하는 얼굴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정서와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예술적 표현이다. 이 표정들은 귀신을 쫓는 기능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경계와 웃음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이중적 역할을 한다. 또한 장승은 마을 공동체의 상징으로 기능했다. 장승을 세우는 일은 개인이 아닌 마을 전체가 함께 준비하고, 일정한 의식을 통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유대감을 확인하고, 마을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함께 지냈다. 이는 장승이 단지 조형물이 아니라, 공동체적 정체성과 의례의 중심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장승은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삶의 방식에 깊숙이 자리한 상징물이었으며, 지금도 많은 지역에서 장승제를 통해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단순한 민속 조형물일 수도 있지만, 장승은 한국인의 종교적 감성, 예술적 감각, 공동체 의식이 융합된 다층적 문화유산이다.
2. 장승의 조형성과 민속적 역할
장승은 외형적으로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조형미, 기능성, 상징성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한국 전통 목조 조각 중에서도 장승은 가장 대중적인 형태로, 예술성과 신앙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독특한 유산이다. 먼저 조형적 특성부터 살펴보자. 장승은 대부분 나무 또는 돌을 사용해 약 2~3미터 높이로 제작된다. 나무 장승은 주로 팽나무, 소나무, 참나무 등 비교적 단단하고 질긴 재질이 사용되며, 돌장승은 자연석 혹은 석재를 다듬어 만든다. 나무 장승은 시간이 지나면서 썩거나 훼손되기 쉬운 반면, 돌장승은 보다 오랫동안 보존되어 마을의 상징으로 기능하기 용이하다. 장승의 얼굴 표정은 매우 인상적이다. 으르렁거리는 듯한 눈썹, 불쑥 튀어나온 눈, 큼지막한 입과 이빨, 위압적이면서도 익살스러운 느낌은 보는 사람에게 웃음을 유도하는 동시에 경계심을 준다. 이는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사람들에게도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주어 마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는 기능도 한다. 더불어 이 표정 속에는 당대 사람들의 해학과 풍자가 스며들어 있다. 장승에 새겨지는 글귀들도 의미심장하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외에도 ‘사직대장군’, ‘성황대감’, ‘호국대장군’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사용되며, 어떤 경우에는 마을의 이름이나 연호, 건립 연도, 시주의 이름이 새겨지기도 한다. 이는 단지 기능적 표지를 넘어서, 장승이 마을 역사와 신앙의 기록이자 유물임을 뜻한다. 장승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앙 대상이 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장승 앞에 제물을 차리고 비를 기원하거나, 풍년을 기도하고, 질병의 퇴치를 소망했다. 여성들은 자녀를 원할 때 장승에 실을 묶거나 기도를 올리는 풍습도 있었다. 이는 장승이 단순한 표지물이 아닌, 공동체의 염원이 투영된 ‘살아 있는 신앙의 상징’이었음을 보여준다. 장승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조형물로는 솟대와 돌탑이 있다. 솟대는 장승과 함께 마을 어귀나 제당 근처에 세워지는 기둥형 조형물로, 보통 위에 새가 앉아 있으며, 하늘과의 교감을 상징한다. 솟대는 주로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쓰이며, 장승이 땅과 경계를 지키는 수호신이라면, 솟대는 기원의 대상을 향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현대에도 장승은 민속축제나 문화체험 행사에서 중요한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많은 지자체에서 장승 축제, 장승 조각 체험, 장승 세우기 의식 등을 개최하여, 관광객들에게 한국의 민속 문화를 체험하게 하고, 지역 정체성을 홍보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장승이 단지 전통 속에 머물지 않고, 살아 있는 문화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3. 장승의 현대적 계승과 문화 콘텐츠로서의 가능성
오늘날 장승은 단지 전통 조형물이 아닌,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서 그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과거 마을의 수호신이었던 장승은 이제 예술과 관광, 교육, 지역 정체성의 상징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그 재해석의 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첫째, 장승은 지역 축제와 관광 자원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라남도 해남에서는 매년 ‘해남 장승축제’가 열려 전국의 장승 작가들이 참여해 자신만의 장승을 전시하고, 시민들이 장승을 직접 제작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이러한 행사는 장승을 전통으로만 고정하지 않고, 현재의 삶과 연결하는 창의적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장승은 예술적 소재로도 각광받고 있다. 장승의 과장된 표현과 해학적인 얼굴은 현대 조형예술에서도 풍부한 영감을 제공하며, 현대미술, 공공미술, 설치미술 작품의 모티브로도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특히 시각적으로 강한 인상을 주는 장승의 형태는 도시 디자인과 접목되어 벽화나 조형물로 재탄생되고 있다. 셋째, 장승은 교육적 자원으로서도 가능성이 높다. 초등학교 사회·도덕 교과에서 지역 문화 유산과 공동체 의식을 가르치는 데 활용될 수 있으며, 장승 만들기 체험은 창의력과 협업 능력을 동시에 길러주는 교육 콘텐츠로도 활용된다. 특히 장승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제례 체험은 현대 아이들에게 전통의 의미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식이 된다. 넷째, 장승은 디지털 콘텐츠로서의 확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장승 캐릭터를 활용한 애니메이션, 게임, 웹툰은 물론, 증강현실(AR)을 통해 장승을 실제 거리나 스마트폰 화면에 구현하여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개발되고 있다. 이는 장승을 전통 유산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도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새로운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장승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외교 자산으로도 가치가 크다. 단순히 ‘한국의 조각물’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고 평화를 기원하며, 웃음과 풍자를 담고 있는 조형물이라는 내러티브는 세계인에게도 신선한 인상을 준다. 특히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도 점점 주목받고 있는 ‘공공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장승은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다. 결국 장승은 과거의 수호신에서, 현재의 문화 자산이자 미래의 콘텐츠로 진화 중이다. 그 속에 담긴 철학과 공동체 정신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으며, 우리 사회가 잃어가는 유대와 배려, 소통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상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장승의 미소는 단지 조각의 웃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다.